설래였다. 제대로 잠도 이루지 못했다. 새벽에 일어나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었다. 더우기 21.3KM의 산길을 가야한다는 것은 더 큰 부담이었다. 그러나 도전해 보고 싶었다. 나를 위해 내 가정을 위해 더욱 그러했다. 잠든 가족들을 뒤로 조용히 집을 나섰다. 어젯밤 가족들은 아빠의 완주를 기원해 주었다. 내겐 더없이 소중한 가족이다.   

새벽공기는 내 볼을 스쳤다. 환하게 밝혀진 회사 정문에는 참가자들이 분주한 움직임을 하고 있었다. 한 쪽에 준비된 차량에 몸을 실었다. 아직 새벽 어둠은 도로를 적시고 있었다. 고속도로를 힘차게 달려가는 각 자의 생각은 다르겠지만, 분명 우리는 지금 한 길로 가고 있었다. 너와 내가 아닌 '우리'라는 하나로 함께 떠나고 있었다.

이내 여명은 온 세상을 환하게 밝히기 시작했다. 햇살이 차창을 때릴 쯤에 잠시 감았던 눈을 떴다. 준비된 김밥으로 간단히 요기를 채웠다. 버스는 더욱 힘차게 목적지를 향해 내달았다. 8시가 조금 넘은 시간 충북 죽령휴게소에서 모두 하차를 했다. 그리고 간단한 체조를 했다. 우리의 의지만큼이나 구호는 힘찼다. 주변의 사람들이 우리를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아스팔트로 포장된 비탈 산행은 처음부터 호흡을 어렵게 했다. 어느새 구슬땀이 이마에 베이고 땀은 등으로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봄이지만 바람이 제법 세차게 불었다. 황사 같기도 하고...

철쭉제 마지막 앞날이었다. 예상과는 달리 등산객은 많지 않았다.그렇게 한참을 오르고 또 오르니 해발 1300 고지 제2연화봉이 우리를 반겼다. 솔직히 산행에는 자신있었지만, 장시간 산행에 대한 부담으로 체력 안배에 더욱 신경을 썼다.

종주팀에서 지급한 오이를 먹고 나니 다시 힘이 났다. 준비물도 적당했다. 오이 참치 사탕 삼각김밥 등 간편하면서도 치밀하게 준비한 흔적이 느껴졌다. 연화봉 정상에 도달한 시간은 11시 경으로 기억한다. 연화봉 정상에는 철쭉이 마지막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바람도 세차게 불고 있었다.

멀리 보이는 비로봉 정상이 눈 앞에 다가왔다. 제1연화봉은 비로봉을 가기위한 경유지 정도였다. 옛날 한양길로 가는 문경새재와 흡사했다. 쉬지 않고 오르고 또 올랐다. 그 때마다 산은 나를 떠 밀고, 나는 계속 오르려 했다. 비로봉 정상이 눈 앞에 다가 올수록 다리는 조금씩 무거운 지기 시작했다.

해발 1439 비로봉 정상, 5월의 마지막 날이었지만, 정상에서 부는 바람은 흡사 초 겨울을 방불케했다. 오르는 길 주변에는 희귀 식물보호를 위해 관리사무소에서 집중 관리하고 있었다. 주목군락지도 있었다. 비로봉 정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어 머물기가 어려웠다.

곧장 국망봉으로 향했다. 이번 산행에서 제일 어려운 코스는 비로봉에서 국망봉으로 향하는 코스였다. 길도 좁고, 체력적으로도 부담을 느낄 타임이었다. 힘들고 어렵게 간신히 주저 앉으면 일어나지 못할 것 같았다. 왼쪽 무릎에 통증도 왔고, 다리고 저리기 시작했다.

국망봉은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왕자 마의태자 신라를 회복하는데 실패하고, 망국의 한을 달래며 소백산 국망봉에서 옛 도읍지인 경주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나라를 잃은 슬픔을 어디에다 비하겠는가? 회사가 부도나고 길거리로 나내몰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마의태자의 슬픔을 뒤로하고 하신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왜 회사는 이토록 고통스러운 일을 하고 있을까? 주말에 가족들과 아니면경치 좋은 곳에 가서 즐겁게 놀다오면 더 좋을 걸.

몸에 고통을 가하면서 무슨 업보가 그리도 많은지? 그리고 나는 왜 여기에 합류해 이 먼 길을 동행했는지? 이런 저런 생각의 끝에서 나는 한 가지를 얻었다.

쇠고기 수입문제로 많은 사람들이 촛불 시위에 참가하고 있다. 촛불의 의미는 자신을 태워 주위를 밝게하는 희생정신이 있다. 나는 분명 알 수 있었다. 백두대간 대장정은 국망봉에서 곡을 읊조린 마의태자의 슬픔과 고통, 나라를 잃은 자의 비애가 어떤 것인지를 일깨워준 것이다.

오늘의 우리들이 우리의 희생과 도전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와 다음 세대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기 위한 자기희생의 발현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번 산행을 통해 백두대간 대장정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이들은 모두가 촛불처럼 자신을 희생하고 가정과 회사를 밝게 만드는 선각자들이다. 말로만 구호로만 외쳐대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어느 한 개인의 안위보다는 모든 이들에게 더 큰 의미의 행복을 염원하는 이 시대의 참다운 리더들이다.